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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등불: 변정애

미디어USKorea
2017-06-07

등불은 어두움에 빛을 발해 우리 인간들의 눈을 밝히는 초능력의 원동력이다. 등불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가늠 못하는 인류에게 불을 밝혀 생활터전을 마련케 하고 생존을 지원하는 큰 몫을 담당해 왔다. 등불처럼 인간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희망찬 경지에 이르게 하는 힘은 그 어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가을은 등불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긴긴 여름 더위에 활짝 열어놓았던 창문을 하나하나 닫고 등불을 켜서 빛을 방마다 채우는 계절이다.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낮의 밝음과는 다르다. 붉으스레한 빛이 나와 방안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변화시켜준다.  결실의 꿈으로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고향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깊은 시골이었다. 옆동네에 마실가서 하루종일 실컷 놀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나서 보면, 이미 밖은 캄캄절벽이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작은 재 너머 우리 집엘 가야 한다. 친구 몇이 동행하나 모두 겁난 얼굴들이다. 우리 모두 오솔길을 따라 투벅투벅 걸어갈 때 캄캄함 속에서 나쁜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금방 덮칠 것 같은 무서움과 공포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괴한이 길에 숨어 있다가 우리 일행에게로 다가오면 어떻게 하나.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기를 얼마나 했던가. 드디어 길은 산모퉁이로 꺾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우리 마을이다.  인가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불빛의 반가움을 느끼는 사람이 어찌 우리뿐이랴.  밤길 행인들은 누구나 조금씩 속으로 진땀을 흘리게 마련이며 멀리서 동네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에서야 긴 숨을 쉬게 마련이다. 이렇게 등불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행인들에게 방향감각을 잡아주고 길인도자의 역할을 해 왔다. 우리집 앞에 도착해  낮은 담 너머까지 흘러나오는 그 따뜻한 불빛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하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내 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 시절 내 고향에는 전기불이 없었다. 집집마다 호롱불, 촛불 혹은 남포등을 사용하여  어둠을 밝혔다. 등불의 종류는 그 이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흙을 빚어 만든 흙등, 쇠를 달구어 만든  쇠등, 유리등,  아크릴등, 수정등, 사기등, 남포등, 호롱불 등등. 인간 삶도 다양한 면이 있을터인데, 즉  행복, 소망,  꿈, 불행,  생사화복 등이 있을 것이다.  그 표현을 이렇게 등불의 모양으로 표시할 수도 있으리라.  또 시대와 나라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가 계속되어 왔을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도시에서 보던 가스등도 잊을 수 없다. 가스등은 내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향수를 모락모락 키워내기도 했다.  그 밖에 사월초파일에 바람에 날리던 연등의 군무, 칠월칠석 관등놀이에 켰던 오색지풍 등 그 어느 하나도 곱지 않은 등이 없었고 어린 마음을 즐겁게 하지 않은 등이 없었다. 등이 인간과 함께 있어 주어서 생활에 활력과 꿈과 내일의 소망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해가 지고 어두움이 동네에 조용히 깔릴 때 집집마다 주부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성냥을 그어 불을 밝힌다.  그 시대 한 개피의 성냥은 집에 빛을 밝히는 귀한 불씨역할을 담당했다. 한 종지의 석유를 담은 등잔은 그 나름대로 그 집의 귀한 제구였었다.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은 밖에 있는 행인들의 마음도 따뜻이 덥혀주었다. 

 그 시대 아낙네들에게 등불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식장만,  자녀 돌보기 등  가사일은 다 여자들이 낮에 하는 일이었다. 밤이 오면 또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낙들은 목화 송이에서 목화씨를 빼고 물레질을 하며 실을 뽑아 그 실에 풀을 빳빳하게 먹인다.  다음에는 베틀에 감아 가족들의 옷을 만드는 무명천 만드는 일을 그 등불 아래서 진행했다. 특히 겨울의 긴 밤은 아낙들에게는 허리가 굽는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 뿐인가.  때묻은 가족들의 옷마다 솔기솔기 뜯어  동네 냇가 빨래터나 우물가에서 빨래 한 다음 잘 다듬어서 대림질로 주름을 펴서 제 모습을 찾아준다.  치마,  저고리, 바지 저고리, 마구자, 두루마기, 버선등이 제각기 빳빳해지면  곱게 접어 주인을 찾아 주어야 끝이 난다.  식구들이 좋아하면 아낙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쉰다. 이렇게 여자들의 일은  주로 긴긴 밤등불 아래서  이루어 진다.

등불의 신세를 지는 것은 이들 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동네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큰 마을 중학교에 들어간다. 학교까지는  짧아야 십리, 좀 더하면 이 삼십리가 되기도  한다. 수업이 끝나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식구들은 이미 저녁 식사를 끝낸 후였다. 어머니가 아들위해 아랫목 방석 밑에 덮어두었던 밥그릇은 아직도 따뜻하다. 따로 두었던 반찬과 함께 소반에 상차려 아들을 먹인다. 등불 아래서 엄마와 아들이 소반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얘기의 꽃을 피다보면 등불보다 더 밝은 사랑의 불이 방안에 가득 찬다. 저녁이 끝나면 엄마는 소반을 들고 부엌으로 가고 아들은 책을 꺼내 숙제를 한다.

그 때는 지금같은 전화는 생각도 못하고 편지 왕래도 드문 시기였다. 식구들 모두 잠이 들면 그제야 젊은 아낙의 여가 시간이 된다. 호야를 빼서 천으로 깨끗이 닦아 불을 밝히고 서울가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끼니는 제 때에 하실까, 혹시 지금 저 싸릿문 열고 ‘여보, 나왔어’ 들어오시지는 않으실까.  호롱불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물가물 불만 밝혀주고 있다.  이렇듯 등불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삶과 같이 했고 안정과 행복을 주고 지혜의 원천이 되었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감사해야 될 일이 너무나 많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불이 환히 켜지고 스토브에 서는 뜨거운 열이 나와 요리할 수 있게 하고 …. 전기는 만능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뉴스가  수시로 들어오고 지인들이 어디 살든지 연락할 수 있고 소식을 순식간에 전하고 있다. 컴퓨터가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어 E-Mail로 연락은 물론,  사진, 동영상까지 주고 받으며 살고있다. 세계가 좁아졌다고 한다. 비행기 타면 수 만마일 떨어진 곳도 몇 시간만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나보다.

이 모든 혜택이 어디서 왔던가? 한 마디로 빛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 빛은 누가 창조했는가? 창세기는 밝히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혼돈의 세계, 마귀의 세계를 정복하고 어둠을 밝히셨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에 인도하시는 등불이 되셨다. 그래서 나는 매일 불을 켜고 성경을 읽는다. 부디 이 마음과 행동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하면서…


[변정애]

연세대 간호학과 졸업

국제대학원경영학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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